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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영화/동영상

노예 12년, 솔로몬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다. by 이소영

http://blog.daum.net/ggc_soyeong/79

2014.04.01 글을 옮겨오다




노예 12년 (2014)

12 Years a Slave 
 8.1
감독
스티브 맥퀸
출연
치에텔 에지오포마이클 패스벤더베네딕트 컴버배치브래드 피트루피타 니용고
정보
드라마 | 미국 | 134 분 | 2014-02-27

 

 혼자 심야에 영화를 본 건 처음이었는데, 월요일 심야라 그런지 사람이 참 없었다.

연인 한 쌍과 남자사람 2명씩 짝지어 두 그룹, 그리고 나. 이렇게 총 7명이 함께 보았다. 극장 안이 참 휑하더라.

심야에 혼자 이 영화를 보니 감정이 정말... 예민해진다고 해야할까.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그런 요동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강의 주요 정보는 다음과 같다.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미국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 넘기는 것.
 음악가 ‘솔로몬 노섭’, 노예 ‘플랫’!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어느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게 되는데…
 단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12년 간의 기록이 펼쳐진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01

 

 영화의 주인공은 솔로몬 노섭(배우 Chiwetel Ejiofor)이라는 흑인이다. 그는 흑인이 자유로운 북부에 살고 있으며, 재능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또한 능력있는 아내와 두 자식을 둔, 사회적으로도 신망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그는, 사기꾼들의 꾐에 빠져 공연을 하고 돈을 벌러 워싱턴에 갔다가 남부에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자유인 증명서가 없었고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그는 매를 맞으며 자신의 진짜 이름대신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그가 갑자기 납치된 후 노예로 팔려가면서 노예를 운송하는 운송선에 타고 있을 때, 그 때 한 대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나는 생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살길 원합니다)"

나는.. 생존하고 있는 걸까, 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생존에 보다 무게를 두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배 안에서 반기를 들던 노예 하나가 죽었고 그대로 바다에 내던져졌다. 그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시체를 옮긴 그는, 일단 생존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리라. 노예들은 남여구분없이 같이 자고, 같이 벌거벗은 채 씻어야 하는, 그런 치욕적인 생활이 일상이었다.

 

 

 

 그가 만난 첫번째 주인은 포드(배우 Benedict Cumberbatch)였다. 포드는 솔로몬의 공을 치하하며 바이올린을 선물하는 등 비교적 자비로운 주인이었으나,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노예들을 대우하진 않는 자였다.  솔로몬 노섭은 포드의 벌목장에서 비상한 머리로 비용을 줄이는 운송방법을 제안해 성공시키고 포드의 신임을 얻게 되지만, 그를 시기한 감독관 지위의 티비츠(Paul Dano)와 싸우게 된다. 이에 앙심을 품은 티비츠는 솔로몬을 목매달아 죽이려하나 솔로몬을 담보로 돈을 빌렸던 포드에 의해 겨우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배려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었다.

 

 인상깊은 것은, 티비츠가 솔로몬을 죽이기위해 목을 매달아 나무에 고정시켜 놓았는데, 포드의 다른 수하가 더 높이 올리려는 걸 제지하긴 하지만 풀어주거나 하진 않은 점이었다. 단지 주인인 포드를 불러오라는 말만 하곤 그대로 두었다. 발 끝이 겨우 닿이는 상황에서 하루 종일 매달려 있는 솔로몬의 모습과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자기 일만 하는 다른 노예들, 그리고 잠깐 나와 구경하듯 살펴보곤 돌아서는 포드의 부인(마님)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노예 중 딱 한 명이 몰래 물을 먹여주고 도망가는 장면이 없었다면, 정말 마음이 뒤틀렸을 지도 모르겠다.

 

 포드는 결국 빚을 다른 자에게 떠넘기는 조건으로 솔로몬을 팔았고, 솔로몬은 두 번째 주인인 에드윈 엡스(배우 Michael Fassbender)에게 가게 된다. 그곳은 목화 농장으로, 매일 목화 수확량을 무게로 재어 너무 작게 수확하면 채찍질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는 팻시(배우 Lupita Nyong'o)라는 여자 노예가 있었는데, 그녀는 목화를 매우 잘 수확(평균 200파운드를 수확하는데 그녀는 늘 500파운드 넘게 수확)하며 어리고 아름다워 엡스의 총애를 받는 자였다. 노예 중 일부는 쇼 부인처럼 주인의 총애를 받아 마님이 되기도 하지만(처음에 포드에게 같이 팔려온 여자 노예처럼 한 순간에 타락할 수도 있음), 그녀는 엡스의 부인에게 질투를 받게 된다. 부인의 견제와 엡스의 성적, 육체적 폭력을 못 견딘 그녀는 솔로몬에게 죽여달라 부탁하지만 솔로몬은 그를 거절한다.

 

 이 장면에서, 흉진 얼굴로, 눈물로 간청하는 팻시의 눈... 그리고 그를 거절하는 솔로몬의 등이.. 너무 슬퍼서, 인상깊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살을 생각할까, 그런데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생존하는 게 맞는 걸까,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예전엔 자살은 무조건 안돼!!!! 하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젠... 모르겠다. 자살을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제 3자가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솔로몬은 이곳에서 백인으로 온 자에게 돈을 주고 편지를 부탁하지만, 배신당해 죽을 뻔하게 된다. 임기응변을 발휘해 겨우 살아난 그는 어느 날 인부로 온 캐나다인 베스(배우 Brad Pitt)를 만나게 되고, 베스는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자였다. 솔로몬은 베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편지를 부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농장을 벗어나 자유인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가족들과도 재회하고 말이다. 그 후 노예제 반대 운동에도 힘쓰고 노예 12년이란 책도 쓰고 그랬다고 한다.

 

 나는 솔로몬이 농장을 벗어나는 장면에서 통쾌한 감정이 든다기보다는 그를 처절하게 부르는 팻시의 음성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팻시는 결국 농장주의 아이들을 낳지만 질투하는 부인에게 학대 당하고 집착적인 농장 주인 엡스에게 학대 당하는 등의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특히, 채찍질로 살이 다 터져나가는 장면에선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마음이 불편해져서 외면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솔로몬의 마차가 멀어질 때 팻시의 모습은... 아마 솔로몬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그는 그곳을 벗어난 엄청난 행운아였으나, 거길 벗어나기 위해 겪었던 일들,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존을 위해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했던 과거들이 그를 노예제 폐지 운동, 노예들을 돕는 운동에 앞장서게 만들었을 것 같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문득, 노예제도..라는 구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노예제 하에서 노예들은 농장주의 재산이며, 농장주만 이익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농장주에 따라서는 일부 노예 스스로의 벌이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푼 돈에 지나지 않으며, 비교적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긴 하지만, 자신의 이익 자체에 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잘라버릴 것이다. 농장주가 주인이고, 노예가 노예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돈이 우선시 되어 윤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돈만 주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글을 배우는 것과 같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며, 자신의 입맛대로 설교하여 복종하도록 만든다. 거의 세뇌하다시피.

 

 

 가만히... 생각하다보니.. 우리가 노예의 지위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기업이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턴 비슷한 걸 하면서 느낀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관리의 대상인 '인적자원(재산)'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부 교육만을 허용한다. 또 기업윤리나 기업의 법이라는 이유로 가치관까지 조직의 입맛에 맞도록 철저히 교육시킨다. 마치, 노예 12년에서 농장주들이 성경을 자신의 입맛대로 설교하여 복종하도록 하는 것처럼.

 그리고 돈을 지불하고 시키는 일이므로 개인의 윤리적 기준과는 상관없이 조직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일부 기업에 따라서 대우가 비교적 더 좋거나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역시 조직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 준다면 가차없이 잘라버릴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성과급은 어쩌면 농장주가 가끔 허용하는 자비로운 푼 돈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농장을 탈출할 용기가 있을까? 아니면, 내게 농장주라는 지위가 주어진다면 그 지위에서도 나의 경제적 이익 등을 생각하지 않고 노예들을 한 사람으로 대우할 수 있을까? (내가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꿋꿋이 설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기업가가 되면 종업원들을 돈의 노예가 되게 하지 않고, 기업의 노예나 부속품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렇게 유지할 수 있을까?)

 

... 등등.

무언가 먹먹해지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가고, 그 큰 극장에 나 홀로 가만히 앉아 크레딧의 끝부분까지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음악이 '한스 짐머'의 작품인 줄 몰랐을거다. 그리고 아주아주 뒷부분에, 영화 중간에 배우들이 사람을 묻으며 불렀던 노래인 Roll Jordan Roll 이라는 노래가 다시 흘러나오는 줄 몰랐을거다.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있으려니, 가슴이 참 답답하고 슬프고, 감정에 휩싸일 것 같았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그 노래가 흘렀다. Roll Jordan Roll... 흙으로 덮이는 시체, 덮어둬야만 했던 슬픔과 고통, 존엄성....

 

 아무래도 내게는 솔로몬보다는 팻시가 주인공인가보다. 꿈에 나올 것만 같다. 그녀는 끝까지 비극적인 삶을 살았을까? 엡스의 부인에게 맞아죽었을까, 엡스가 술에 취해 홧김에 죽였을까, 스스로 죽었을까, 아니면 탈출했을까? ....

 

 


 

노예 12년 OST를 소개하고 있는 블로거가 있어서 덧붙인다.

http://blog.naver.com/dragun333/90191282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