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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전시 및 기타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얀 파브르:블루의시간, 송혜수:예술은 마음의 눈물이다_with 백미

http://blog.daum.net/ggc_soyeong/66

2014.01.17 글을 옮겨오다


- [백미] 
흰 눈썹이라는 뜻으로,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백미 (벡스코 옆 미술관) 

 

 

한달에 한번 벡스코 옆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를 들으며 작품들을 감상해보는 모임인 '백미'에 참석하여

 부산시립미술관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부산에 살면서도 처음 가보게 된... 미술관. 예술과 나는 참 동떨어졌다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두 가지 전시의 도슨트를 한꺼번에 들었다. 원래는 하나만 듣기로 했는데, 당일날 부탁을 드려 두 전시를 모두 듣게 되었다. 바쁘실텐데도 흔쾌히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감동이었다 ㅠㅠ

(부산시립미술관 관람안내 : http://art.busan.go.kr/01guide/01_01.jsp / 아침 10시부터 20시까지. 월요일 휴관. 도슨트 시간 사이트 참조)

 

처음 들은 도슨트는 '얀 파브르 : 블루의 시간'(JAN FABRE : The years of the Hour Blue. Drawings and Sculptures 1977~1992)이라는 전시(2013-12-21~2014-02-23 , 부산시립미술관 2층 대전시실에서 하는 전시)였다. 얀 파브르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벨기에 출신의 작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 앙리 파브르라는 곤충학자의 증손자라고 했다. 원래 전시, 기획 공연 작가 등을 하다가 화가로 전향하였다고. 살아있는 사람의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 전시를 하는 일은 잘 없는데, 2008년 현존하는 예술가로서는 세계 최초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어서 많이 화제가 되었단다.

 

(작가 정보: 얀 파브르는 1958년 벨기에 앤트워프 태생으로, 획기적인 시각예술가, 연극연출가 및 작가로서 전세계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앤트워프에서 왕립미술아카데미와 시립대학의 장식미술공예과를 수료한 그는 1984년 제 41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1992년 다큐멘타(Documenta)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1992년 시각 예술 부문 네덜란드권 공동체 상(Flemish Community Prize for Visual Art)을 수상하였다. 1990년대에는 인체와 그 변형의 연구에 심취하기도 하고, 곤충에 대한 열정에서 영감을 얻어 벨기에의 파올라 여왕의 의뢰로 브뤼셀 왕궁의 Salle des Glaces 연회실에 150 의 대규모 조각품인 '천상의 기쁨(Heaven of Delight, 2002)'을 제작하였다. 영구적으로 설치된 이 작품에는 1,400,000개의 비단벌레 겉날개가 사용되었다. 2004년에 벨기에 무공훈장과 2007년에는 레오폴드 3세 훈장의 수훈자가 되었다. 2008년에 현존하는 예술가로서는 세계 최초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

 

(사진 촬영: 황철호) 

 가장 처음 만난 얀 파브르의 작품.

파란색 BIC 볼펜 잉크를 풀어 욕조에 손으로 일일히 덧칠한 것이라고.

부엉이와 욕조, 실제로 보면 그 색이 너무 아름답다.

부엉이가 뜻하는 것은 지혜, 밤, 등등 ..

욕조는 일상, 휴식 등등..

 

 

 가장 먼저 이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 문구로 설명된다고 하셨다. "Hey what a pleaasant madness!" (이 얼마나 즐거운 미친짓인가!)

 

 얀 파브르는 1977년경부터 92년까지 파란 BIC 볼펜만을 이용하여 모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인 '블루의 시간'은 그의 증조부인 앙리 파브르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앙리 파브르는 주행성 동물들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밤과 낮의 경계에 있는 시간을 연구하면서 이를 블루의 시간이라 칭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이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하고, 우리말에서 이 시간대를 가깝게 옮겨보자면 '여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이 시간이 매우 길어서 4시간~8시간 정도 되기도 한다고 한다. 밤에서 아침이 오기 전의 그 어슴프레한 시간 말이다.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많은 곤충학자들 중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가 유명한 이유가 무엇일까? 도슨트하시는 분이 이 질문을 하셨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언뜻 듣기만 들었지 그 곤충기를 제대로 읽지도 못했을 뿐더러, 왜 유명한가라는 질문은 던져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파브르의 곤충기가 유명한 이유가 '자신의 스토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곤충만을 관찰한 데이터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녹아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고. 그는 얀 파브르의 작품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가 증조부의 용어를 빌려왔지만, 그만의 스토리를 담아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유명해진거라고 하셨다.

 그는 완벽한 대칭, 완전한 고요, 완전한 포화상태의 순간, 시간의 '경계'를 파란색으로 표현하여 자신만의 '블루의 시간'을 작품에 담았다. 그가 파란색 볼펜만을 고집하여 일일히 종이, 사진인화지, 인견, 나무 등의 표면에 '흔적'을 남긴 것은. 아마도 그만의 블루의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전시의 팜플렛 일부 본인 촬영)

SHOEBOXES(1977)

bic ballpoint pen on shoeboxes.3*(18.5*28*16cm)

DEWEER Gallery, Otegem(Belgium)

얀 파브르가 파란 bic 볼펜(우리로 치면 파란 모나미 볼펜..진짜 흔한 볼펜)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가장 첫 작품.

신발 상자에 그만의 흔적을 남겼다. 그에게 무엇이 영감이 되어 오래도록 이 작업을 지속하게 했을까? 처음 여기에 낙서하듯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 촬영) 

UNTITLED(PUDDLE ON PAVING STONES)(1988)

bic ballpoint pen on paper / 212*158cm

Private collection Belgium, Patrick en Rubenda Gillon-Foubert

도슨트 해설사 분이 한창 설명 중..

돌길 위에 종이를 대고 그 위를 파란색 볼펜으로 칠한 것이 위 작품이라고. 돌길의 닳은 부분들이 그대로 보인다. 빈 공간에 칠해진 파란 볼펜은 마치 곤충이 날아가는 모양 같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참 묘하다.

 

 

(사진 촬영: 황철호)

 전시장의 양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대형 작품. 약 17m*4m 쯤 된다고 한다. 원래는 뒷 공간에도 지나볼 수 있었는데, 훼손 우려로 그건 금지되었다고. 직원 한.. 10여명 정도가 공동작업하였지만, 작가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지시한다고 한다. 전시장에 옮겨올 때도 저것을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봉과 팽팽한 정도 등 하나하나 다 큐레이터가 작가와 논의하여 행해졌다고. 

얀 파브르에게 데셍은 곧 설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전시장 전체의 공간을 '블루의 시간'으로 만드는 중요한 작품으로, 관객과 작가의 작품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사진 촬영: 황철호)

 공산주의에 호감을 갖고 만든 작품과, 영상 작품을 간단히 훑어보고 난 후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도슨트를 듣는 사이 어느새 다른 관람객 분들이 많이 모여서 대규모가 되었다. 작게 보이는 저 설치 작품은 머리를 안에 넣고 볼 수 있는 체험형 설치물이었다. 직접 머리를 넣어보지는 못했지만, 들어가 본 여성분의 말에 따르면 아늑한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 다음에 다시 가서 넣어봐야지.

그 외에 기울어진 침대(시트와 베개 등이 파란색 볼펜을 이용하여 만들어서 파랬다)와 실제 곤충의 몸통이나 날개 등을 콜라주해놓은 작품 몇개를 훑어보았다. 침대를 보면서 설명해주길, 작가 분이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신다고. 예술가는 원래 예민한 구석이 있다던데, 예민해서 그런걸까.

 

(사진 촬영: 황철호)

 

(본인촬영)

 

 넓은 공간에 위와 같은 데칼코마니들이 가득 걸려있어서, 딱 보자마자 압도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내 보잘 것 없는 폰카 사진으로는 잘 안 와닿아서 같이 간 오라버니의 멋진 디카 사진을 위에 올렸다. 사진만으로도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가?

완벽한 균형, 대칭 등이 참 위화감이 들었다.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원래는 작가 분이 이곳에 방문하기로 하셨었는데, 불투명하게 되었다고. 실제로 얀 파브르라는 멋진 분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참 아쉽게 되었다.

 

(사진 촬영: 황철호)

SCISSOR HOUSE(1990)

Bic ballpoint pen on wood/350*150*820cm

DEWEER Gallery, Otegem(Belgium) 

 

 얀 파브르의 대표작인 가위집이라는 작품이다. 

 나무에 파란 볼펜으로 일일히 칠해놓았다. 양쪽의 안에는 계단이 있고, 가운데는 가위로 잘라놓은 듯 약간 단절된 공간이 있다.

어떤 의미일까?

 가위집 근처에는 다양한 수염들을 그려낸 작품이 있었다. 

 

 

(본인촬영)

얀 파브르는 작업과정을 한계점까지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드로잉 작품은 그의 손 안에서 끝이 없는 영원한 시작으로 변하고,

이 시작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드로잉 작품들은 지속적이고 거칠며 목적 없는 소용돌이,

즉 절대적인 창의성을 의미하며, 창의성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한다.

- 도날드 쿠스핏

<블루의 시간>이라는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블루의 시간'은 내가 포착하려고 찾아 다녔던 바로 그 시간이다.

이는 이름 없는 것들이 소생하는 때에 존재하는 밤과 낮 사이의 공간이며

생과 사의 기로이다.

- 얀 파브르

 얀 파브르의 전시를 훑어보면서, 한번 더 와서 혼자서 조용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품었던 다양한 궁금증들에 스스로, 혼자만의 힘으로 답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꼭 다시 와봐야겠다.

 그리고 전시를 둘러보면서 그가 그토록 오랜 시간 여기에 몰두하였다는 사실이, 그 열정이 참으로 놀라웠고 무엇이든 하나를 꾸준하게 하다보면 언젠가 그것이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리라는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 다음에는 그가 증조할아버지의 '블루의 시간'을 자신만의 '블루의 시간'으로 만들었듯, 나에게 나만의 '블루의 시간'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가 직접 느꼈을 유럽의 그 시간대, 그 파란색을 찐하게 느껴보고 싶어, 언젠가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시간대에 꼭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그나마 가깝게 느꼈던 이 블루의 시간은 아마도 지난 기말고사를 위해 새벽녘에 도서관으로 향하던 그 6시 무렵이 아니었을까. 앞에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알아보기에는 어둡지만, 길을 걷거나 활동하는 데는 특별히 지장이 없는 그 어슴푸레한, 파아란 시간.

 내게는 아주아주 어렵게만 느껴졌던 예술이, 도슨트를 들으면서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다음에 혼자 올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얀 파브르의 전시를 모두 보고난 후, 부탁을 드려 듣게 된 두번째 도슨트.

송혜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예술은 마음의 눈물이다. 라는 이름으로 3층 소전시실에서 2월 16일까지 하는 전시였다.

 

작가 정보: 송혜수, 宋惠秀, SONG HYE-SOO (1913-2005) / 1913년 8월 13일 평양 출생 , 상수보통학교, 숭인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쿄(東京)에서 츠다 세이슈(津田正周)에게 사사,1938-1943 도쿄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 서양학과 졸업, 일본 동경 제국 미술학교 서양화과 5년 졸업.

 

경력 
1938 재동경미술협회(백우회(白牛會))회원 
1950 50년 미술협회 회원 및 심사위원 
50년 미술협회 결성(김병기, 김영주, 김환기, 남관, 박고석, 송혜수, 장욱진 등) 
창립전은 전쟁으로 취소됨. 1.4후퇴 떄 피난 후 부산에 정착함. 
1951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 
1972 한국신자유미술가회 창립위원(부산) 
1977 신조형파 창립위원 
1980-1990 미국 LA거주 
1989 Cosmopolitan Art Gallery 창립회원(U.S.A/ LA) 
1950-2005 송혜수 미술연구소 운영 
2005 송혜수 미술상 제정 
2005 3월 29일 타계 
후기회 창립위원, 제3회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등 

수상 
1941 제 11회 동경독립미술관 입선 (김형만, 양달석, 조동벽, 홍일표 등 출품) 
1942 제 6회 동경미술창작가협회전(지유텐, 自由展)입선 
1943 제 7회 동경미술창작가협회전(지유텐, 自由展)입선 및 본상 수상 
1989 눌원 문화상 수상 
2001 제 4회 동다송 문화상 수상 
2004 부산시 문화상 수상 

 

국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이시라고 하는데, 정작 나는 처음 들었다. 부산에 이런 분이 계셨다니... 내가 얼마나 문외한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송혜수 선생님은 서양화 1세대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첫번째 혹은 가장 넓은 곳에 있는 것이 대표작일 가능성이 많다고 관람시 그 점을 생각하면 좋다는 조언도 얻고, 송혜수 선생님의 다양한 작품들을 훑어보았다. 풍경화도 있었고, 소를 그린 것도 있었고, 부친을 그린 것도 있었다. 가장 오래 보았던 작품은 '부친상'이라는 작품과 글귀 하나였다.

 

(출처: 부산시립미술관 도록) 

부친상1 (1939)

캔버스에 유채 33*9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전시장에선 아주 두꺼운 프레임 안에 들어있었다.

그래서일까 작은 작품의 폭이 더욱 부각되어보였다. 일반적인 인물화와 다르게 주위 여유 공간이 하나도 없고, 시선이 바라보는 곳에 무엇이 있는 지 전혀 알 수 없다.

 도슨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송혜수 선생님이 이 나이대가 되니 부친과 너무도 닮아 이 그림을 자화상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고 한다. 2세대가 공존하는 그림이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무언가 숨이 막히는 절절함 같은 걸 느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었을까? 무언가 애잔하면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아버지. 그런게 떠올랐다.

 

 

 

 

 나는 이 글귀도 참 인상깊었다. 마음에 팍 꽂혔다고 해야하나. 이 글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그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했는지가 느껴졌고,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런 일을 하면서 저렇게 평생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삶이 참 행복해보였다.

 

 송혜수 선생님의 전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하고 한단계 높은 수준의 설명을 듣기로 기약하고

짧게 볼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다음 번을 좀 더 기대하면서 도슨트 듣기 전에 이것도 혼자 감상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도 여러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을 훑어보고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위 작품들 중 가족사진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서로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그랬는데,

도슨트 선생님이 수준이 많이 올라온 것 같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다음에 또 좋은 전시 있으면 안내해주겠다고

명함도 달라고 하시고 해서 모임의 일원으로서 참 기분이 좋았다.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 잘 몰라서 검색해보았다.

이우환 미술가 - 점,선 등을 통해 사유하게 하는 작가. 물성, 개체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모노하 사조 창조. 철학과 출신

이라는 설명만 간략하게 들었다. 모노하는 세키네 노부오라는 분과 함께 이우환 화가님이 만든 사조라고..

(자세한 설명: http://blog.naver.com/aramart01/20201454953)

 

(출처: 네이버 인물검색)

 

그리고 박수근 선생님과 김환기 선생님이 앞으로 더욱 유명해질 분들, 정말 멋진 분들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박수근 선생님 관련 기사: http://www.ajunews.com/view/20140115084702365

(출처: 네이버 인물검색)

 

김환기 선생님 관련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1541

 

 

 

(출처: 네이버 인물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