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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1 글을 옮겨오다
정의를 위한 민중의 항거
- 왕모링의 <안티고네>를 보고
1. 작품의 주제 및 예술적 완성도
<안티고네>(소포클레스 작, 왕모림 각색 및 연출, 2013.10.3.~13, 공간소극장)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바탕으로, 대만의 백색테러 2.28사건, 중국의 천안문사건, 한국의 광주항쟁을 엮어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는 국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외삼촌이자 나라의 왕인 크레온에 대항하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의 모습과 아시아의 각종 계엄 상황에서 항거했던 민중들의 모습을 일체화시켜 보여주면서 민중이 겪어야 했던 상처와 아픔을 들추어내고, 국가와 권력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장 큰 작품의 주제이다.
그러한 주제를 보여주기 위해 공연 내용에는 황석영 작가의 <오래된 정원> 일부와 홍성담 <판화시집>을 일부 발췌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기존에 있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서로 절묘하게 엮어 작가의 주제의식을 잘 반영하였고,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사건과 여러 소재들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아 개성 있게, 창의적으로, 또 산만하지 않고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 배우의 연기
안티고네(홍승이 분)의 연기는 내면연기표현, 특히 표정이 좀 약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대사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고저나 강약, 완급이 거의 일정한 편이고 울림이 많아서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비음을 좀 많이 쓰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에 계엄 상황의 아픔을 보여주는 편지를 읽거나 하는 부분에서의 연기와, 안티고네 이야기를 할 때의 연기가 거의 똑같았고, 두 부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표정과 동일한 대사처리를 보여줘서 아쉬웠다. 약간 말하듯이 담담한 톤으로 처리했으면 하는 부분에서도 강약을 세게 넣어 애잔함이나 슬픔 같은 감정보다 지나치게 비장함을 많이 보여줘서 아쉬웠던 것 같다.
이스메네(쳉이젠 Cheng, Yin-Chen 분)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표정연기가 매우 뛰어났던 것 같다. 또 대사도 이스메네 역에 어울리는 감성처리를 해줘서 좋았다. 언니인 안티고네의 결단을 말리는 부분에서는 약간 여리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나중에는 안티고네의 결정을 따라 함께하겠다는 부분에서는 결연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리액션도 좋았고, 무용을 하는 듯 제스처도 적절히 몰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쓰러져있을 때 손끝, 발끝까지 세심하게 연출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행위예술을 하는 것 같아 매우 좋았다.
크레온(백대현 분)의 연기 또한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분노 연기나 비장함을 연기하는 것, 또 약간 실성한 듯한 광기어린 모습 등을 잘 표현하였다. 대사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의 감정표현도 좋았지만, 편지를 읽을 때의 연기와 안티고네 이야기를 할 때의 연기가 달라서 더 좋았다. 편지를 읽을 때는 조금 담담하게 편지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사를 처리하여 그 슬픔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안티고네 이야기 속 크레온을 연기할 때는 조금 비장하거나 권위적이거나 하는 모습을 강조하여 강약과 고저를 세게 넣어 표현하는 점이 좋았다.
폴류네이케스(해유판, He Yu-Fan 분)의 연기는 중국어 특유의 강약과 고저로 약간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의 대사처리가 좋았다. 이미 죽어있는 상태인 그가 하는 말은 약간 몽환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어야 했는데 그는 그 점을 잘 소화한 것 같다. 마치 음유시인처럼 읊조리는 이상적인 말들과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등이 죽은 그의 이상이나 사상이 높거나 멀리 있다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조금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크레온에게 두들겨 맞는 연기를 할 때에도 적절한 리액션으로 극의 진행에 방해되지 않고 잘 한 것 같다.
3. 무대미술과 장치
무대미술디자인은 한국의 경우엔 황지선, 대만(台北, 타이페이)의 경우엔 왕영홍이라는 분이 맡았고 무대기술지도는 한국은 김만중, 대만은 허종인이라는 분이 맡았다.
무대는 첫 장면부터 매우 엄중하고 비장한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좌우측에는 외국 배우들의 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한글 자막이 나오는 스크립터가 있고, 정면에는 세 개로 분할된 경사면을 지닌 바위산과 비슷한 느낌의 무대가 있었다. 아래쪽은 CO2같은 연기를 쏘아 안개효과를 주고 있었다. 그 무대 좌측에는 스탠딩 마이크가 하나 있고, 극이 진행되면서 보니 그 무대 경사면 가장 높은 부분에는 돌을 떨어뜨리는 장치가 있었다.
대체로 무대는 시대적 배경이나 공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주제를 드러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 이 극의 경우 공간의 이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계엄 상황의 어떤 비극적이고 슬프며 잔인한, 피 튀기는 그 때의 모습을 무대 뒤쪽으로 직접적인 사진이나 영상들을 상영하여 주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었으며, 경사면에서 굴러 떨어뜨리는 흙이나 돌 따위를 통해 하강의 이미지, 억압의 이미지를 주었다.
등·퇴장로(退場路)가 무대의 뒤쪽 양측에 있었는데, 무대의 뒤로 갈수록 경사면이 가장 높은 부분이어서 뒤에서 등장 시에 한 번에 경사면 위로 오르는 데 조금 불편함이 있어서 배우가 삐끗하기도 한 점은 조금 아쉽다. 한 번에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수준에서 높이가 맞춰져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4. 조명
조명디자인은 대만의 Divel 이라는 사람이 맡았다. 첫 장면에서, 무대 정면의 경사면으로는 푸른 조명이 비추고 있고, 좌측 위로는 붉은 조명과 노란 조명을 섞어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일부는 붉고 나머지는 노란색인, 마치 태양 같은 느낌이 들도록 조명처리를 하고 있었다.
극이 진행되면서 보니 붉은 조명은 뜨거운 태양이나 피와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 듯 했고, 푸른 조명은 새벽의 느낌을 주는 듯 했다. 계엄군에게 고문 받거나 하는 등 잔인한 장면에서 강렬한 붉은 계열의 조명으로 나타내고, 또 편지를 읽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슬픔 등을 나타내기 위해 그를 읽는 배우에게 핀 조명을 쏘고 노란 계열의 조명을 써서 몰입하면서도 뭔가 그들을 위로하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대체로 이 극의 경우에 조명은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변화를 표현하기 보다는 인물의 심리라든지 주제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대체로 붉은 조명, 노란 조명, 파란 조명이 쓰였으며 초록색 계열 등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느낌을 주어 극이 진중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5. 연출의 의도 및 특징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의 공통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진중한 배우들의 외침을 통해 관객들이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그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이 연출진의 가장 큰 의도인 것 같다.배우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대사 외에도 관객을 향해, 허공을 향해 내뱉는 대사가 많은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속에 파동을 줄 만한 돌들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민중들의 어떤 ‘외침’과도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연극이 특이한 것은, 그리스 비극을 창의적이고 참신한 각색을 하여 ‘계엄’에 대한 것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과 한국과 대만의 배우, 스텝들이 모두 참여하여 진짜 공동제작 작업을 통해 공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말보다는 감정에 더 초점을 두어 연기할 수 있도록 언어를 통일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6. 총평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아마도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스 비극인 <안티고네>, 즉, 너무나도 익숙한 것을,창의적이고 참신한 주제를 입혀 각색하여 낯설게 바라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아는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또 무엇보다 우리의 정서와 경험으로 공감하고 회상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과 완성도 높은 다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의 일부를 발췌하여 작품에 넣은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적절히 잘 배치시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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