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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책

[독후기록 #4. 김영하 산문 '보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다

<김영하 산문,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보다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9-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소설가의 눈에 비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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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다

 

얼마 전 알라딘에서 잔뜩 책을 충동구매했었는데, 그 때 샀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당시 김영하 씨의 힐링캠프 동영상 클립을 보고 책 목록에서 '김영하'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구매했던 책.

 

 부산시민공원에 처음 방문했다가 근처 카페에서 추위를 좀 피할 겸 녹차라떼 한잔하며 읽었던 책이다. 그 때의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 또 약간 서늘한 공기와 따뜻한 불빛, 온기 등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책에 더욱 몰입하게 하고 기억에 오래남게 한 것 같다.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포스팅이 점점 늦어지고 있는데, 오늘은 잠들기 전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포스팅하고 잘까 한다. (사실 미술관 전시도 한 번 더 갔었고, 심포지엄 참석했었던 후기도 마저 남겨야 하고, 무크 강의 수강 후기 시리즈도... 사실 포스팅하려고 선정해둔 글은 많은데 손을 못대고 있어서 아쉽다... 그것들은 글을 써내려가는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이 들어서... 간단한 것부터 하기로 함)

 

  일러스트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또 김영하 작가의 인사이트들에 공감할 만한 것이 많아서 참 즐겁게 읽었었는데.... 아무튼, 이제 인상 깊었던 부분들에 대해 짧게 소개해보겠다.

 

 책 전체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아마 작가님도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해서 가장 처음인 1부 첫 글로 적지 않았을까 싶은, '시간 도둑'이라는 챕터가 참 가슴과 뇌리에 콕콕 박혔다.

 

부자와 빈자 모두 스마트폰에 시간을 빼앗기지만 양상은 빈자에게 좀더 불리하다. -p13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심할 수록 더 힘이 강한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들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지위가 낮은 이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부자나 권력자와 달리 사회적 약자는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의 타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애타게 구직을 하는, 어제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는 젊은이가 스마트폰을 끄고 친구와의 대화에만 온전하게 집중하기는 어렵다. 그건 사치다. (중략) 직급이 낮은 직원이라든가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을의 처지에 있는 이들 역시 스마트폰의 전원을 함부로 끄지 못한다. - p14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 - p15

 

 작가의 마지막 말에 나는 한동안 멍-했다. 내가 바로 스마트폰의 전원을 함부로 끌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고, 또 어떻게 소중한 시간을 지킬 수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땅한 답이 빨리 떠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자기 '갑'이 될 수도 없고.... '슈퍼 을'이 되어야 하나? 그런데 어떻게 되는 거지? 씁쓸함이 녹차의 쌉싸름한 맛과 어우러져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패스트패션 시대의 책'이라는 챕터였다.

 

 책값은 패스트패션의 가장 저렴한 옷값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싸다.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의 물가는 36퍼센트가 올랐는데 책값은 불과 18.5퍼센트밖에 오르지 않았다. 실제 가치로 본다면 책값은 십 년 사이에 더 떨어진 것이다. 종잇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판에 책은 왜 더 싸지는 것일까. 스위스 명품 시계 회사 사장의 인터뷰에 힌트가 있다. 당신네 회사 시계는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기자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부연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값이 떨어집니다. 많은 회사들이 뛰어들어 서로 경쟁하며 값싸게 생산할 방법을 결국 찾아내거든요. 저희가 만드는 시계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아닙니다. 그러니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 p161

 

싼 것은 더 싸지고 비싼 것은 더 비싸지는 시대다. -p162

 

 책이 '필수품'이기 때문에 싸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시각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싼 것은 더 싸지고 비싼 것은 더 비싸지는 시대라는 말이 너무나도 또렷이 다가왔다.  양극화 현상이 어디에나 있는 세상....

 

 '택시라는 연옥'이란 챕터도 흥미로웠다. 왜 연옥일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했던 지라 그 이유가 명쾌하게 드러나고 나서 뭔가 감동을 받았다.

 

 택시는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이 깊다. 애매하다. 택시를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게 만들려면 요금을 저렴하게 해야 한다. 그러데 요금이 저렴해지면 기사들의 월급을 올려줄 수가 없다. 택시를 쾌적하고 고급한 교통수단으로 만들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적시에 기쁜 마음으로 이용하게 만들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 그러면 승객들이 피해를 본다. (중략)

택시는 대중교통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우는 여집합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p174

 

택시의 운명은 수동적이다. -p176

 

연옥은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 (중략)

연옥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세계다. - p177

 

 택시는 교육이나 정치가 그렇듯이 한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 무질서한 교통, 높은 강력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 p177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자리를 정리했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p208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209

 

  내가 노트를 쓰려고 노력하고, 블로그를 쓰려고 미약하나마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자기 전이나 잠에서 깬 직후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 생각의 흐름을 어느 순간 놓쳐버리면 찰나의 순간에 그 생각들을 까먹어버린다. 그래서 종종 '아, 메모해둘걸'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업무를 하면서나 일상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이 희석되어가는 경험을 하다보니, 무언가 남겨놓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비록 실천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남기려고 노력을 조금씩 해보고 있다.

 

 어렸을 때 그 날 배웠던 것을 엄마에게 가서 '엄마, 이거 알아? 내가 문제 내볼게 맞춰봐.'하며 재잘거리며 공부했던 내 학습방식을, 이제 써먹을 상황이나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글을 통해 스스로에게 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 동안 출퇴근 시간 또 여가시간 틈틈히 몇 페이지씩 이 책 저 책 읽었던 것들도, 그 때 그 때 적어뒀다가, 이렇게 간략하게라도 적어봐야지. :)

 

 작년 해운대에서 이 책을 썼다는 작가님이왠지 더 친숙하고 공감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