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픽션, 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이원재 외 지음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
이 책은 사회에 대해 제약 조건 없이 상상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소셜픽션’의 개념을 제시하고, 전 세계 혁신가들이 했었고, 또 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소셜픽션들을 소개하고 있다. 소셜픽션은 사회적 상상을 최대한 발휘하여 장기적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역방향 기획의 일종으로, 공상이나 예측과 달리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염원이 담겨있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 개념을 틀로, 현재 사회를 있게 한 과거의 사람들인 케인즈, 넬슨 만델라,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무하마드 유누스, 서명숙 등의 상상을 설명한다. 또 참여, 자립, 달라지는 정부, 알고리즘 사회라는 네 가지의 키워드 테마로 현재 여러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상상들을 보여주고 독자인 우리에게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어떤 것이냐 묻는다.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문득 이렇게 저자가 상상이 필요하다고 외칠 정도로 우리 현실에 제약이 많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슬픔을 느꼈고, 또 요즘 직업을 구할 시기가 되어서 그런지 자주 보이는 ‘사라지는 직업들’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미래 사회 모습의 핵심 키워드로 꼽은 ‘알고리즘 사회’에 꽂혀 다시 책을 읽어보았다.
이 장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건 기계들이나 어떤 알고리즘에 의한 프로그램 등이 인간의 노동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이다. 대학교 1학년 때, 경영정보시스템이라는 과목에서 교수님이 들어준 오래된 예시 중에 한 컴퓨터회사가 개발한 체스프로그램과 세계 체스 챔피언의 경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즈음부터 사람들은 이런 상황들을 더욱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일들이 분업화되고, 표준화되고, 규격화되었다. 그에 맞춰 사람들은 기계처럼 변해갔다. 이런 상황은 산업화가 한창 이루어지던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확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부분 표준화해서 만드는 프랜차이즈 등을 생각해보라. 프랜차이즈 가게에 일해 본 사람이라면 정해진 매뉴얼이 있고 그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렇게 로봇에게 적합한 일자리는 넘쳐나고, 로봇화 된 우리들은 로봇에게 쉽게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엔 이것이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무인자동차, 무인비행기, 무인지하철, 무인모텔 .... 사람이 없는 곳이 매우 많아졌다. 단순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그러니까 인간 같은 컴퓨터가 생겨나 인간을 대체하는 수준이 되어가는 것이다.
얼마 전, 인기가 엄청났던 영화 <HER>에서 인간과 감정적 교류를 하는 ‘연인’조차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모습이 있었다. 거기서 인공지능 사만다는 작곡을 하기도 하고, 제 스스로의 판단으로 출판사에 연인의 저작물을 보내기도 한다. 또 유머도 있고 공감적인 말도 잘해준다. 사만다는 우리들에게 로봇‘종’이라는 것이 생기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안겨주었다. 개별 개체로서의 지위를 줘야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과 흡사하다. 경험, 지식, 직관 등이 소프트웨어화되고 통계와 확률 계산으로 판단한다. 아직까진 사만다같은 이런 엄청난 인공지능이 나오지 않았지만, 곧 나오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이런 사회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그리 분명치는 않다. 다만, 인간에 대해 많이 탐구해야 그 답이 나올 것임은 분명하다. 모든 것에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건 인간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이나 로봇 혹은 기계들에 의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그들에 대한 탐구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사실 전달만 할 뿐 상황 해석을 하지 못하는 기자, 약의 특성을 암기하기만 하는 약사, 가정에 대한 고민 없이 기술적 방법론에만 능숙한 통계 전문가들은 설 자리가 사라져가는 시대’라며 다가오고 있는 그 사회를 유토피아로 만들지, 디스토피아로 만들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하였다. 다가오는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우리가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존재, 통계화 되지 않는, 규칙성이 불분명한, 관습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 때, 그 때 비로소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기계나 알고리즘 등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상대에게 줄 수 있을 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계나 알고리즘 등이 줄 수 없는 무언가는 분명 상대와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 그 순간의 느낌, 실재하는 관심, 그런 것들일 것이리라.
인문학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을 향한 것이라서가 아닐까. 인간이 느끼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다가오는 사회는, 아니 이미 다가온 사회는, 자꾸만 인간임을 잊게 하고 우리를 기계화하는,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하고 획일화하려는 사회라서, 거기에 대한 저항의 무기로 인문학이 중요한 게 아닐까. 또 우리가 영리기업이 아닌 사회적기업에 열광하는 이유가, 단순히 침체된 경제 속 창조성을 발휘하여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업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적인’ 기업이라 생각해서는 아닐까. 사회적기업가라면 누구보다도 더 인문학적 감성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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