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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책

[독후기록 #1. 오래된 미래_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페루에서의 바람직한 개발방향과 우리나라의 역할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개정증보판)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출판사
녹색평론사 | 2003-12-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지역 라다크. 저자는 빈약한 자원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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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의 바람직한 개발방향과 우리나라의 역할

 

 지난 4, KOICA에 일하는 친구의 초대로, 나는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남미의 페루라는 곳을 여행한 적이 있다. 페루는 우리에게 마추픽추로 대변되는 잉카문명의 국가로 알려진 곳이다. 잉카 문명 외에도 많은 문명들이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양하게 존재했는데, 이런 문명들은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페루는 1532년부터 1824년까지 스페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가 독립하여 공화정 시기를 열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과 FTA를 체결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움직임을 늘리는 등, 개발을 활발히 하여 6~8%대의 꽤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고 있는 국가다.

 

 페루를 여행하면서 수도인 리마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 그 리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거의 한 블록에 하나 이상씩 있는 공사현장이었다. 여기저기 건물을 짓는 공사현장이 참 많았다. 그렇게 점차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빌딩들 안에서 부유한 외국인을 고용인으로 둔 현지인 가정부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나는 내 나이만큼 오래된 이 책을 보며, 여행 때 만났던 페루의 여러 모습들과, 관련하여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자꾸 떠올랐다. 여러 선진국들이 페루의 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그렇게 한지 10여년이 넘었지만, 또 그렇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그 혜택은 페루 사람 전체에 잘 돌아가고 있을까? 페루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려면, 어떤 개발을 해야 할까? 바람직한 개발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는 한 언어학자가 1970~80년대에 라다크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와 서구식 개발로 변해버린 사회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기존의 서구식 개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방향을 제시한 라다크 프로젝트를 보여준다.

 

전통 라다크 사회의 장점과 그 이면

 저자가 경험했던 라다크 사회는 다수가 불교도인 레 지역을 비롯하여 티베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불교 문화권에 있는 농경사회로서, 고원의 사막지대라 척박한 환경에 놓인 곳이었다. 저자는 책의 절반 가까이를 이 전통적인 사회에서 만난 여러 경이로움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는데, 오래전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던 조선시대쯤의 우리나라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그 정도로 놀라워하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달리 그녀는 라다크 사람들의 정신적, 사회적, 정서적 풍요로움에 매우 놀라워했다. 그들은 불교의 사상들인 연기’(우주 만물은 연결되어있다), ‘윤회’(중생이 죽은 뒤 업에 따라 환생한다), ‘’(고정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란 개념들을 믿고 있었고, 그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신앙생활이 들어와 있었다. 그런 종교적 믿음과 혹독한 기후를 가진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결과, 그곳은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고, 사람들은 갈등을 잘 일으키지 않았으며 검약정신으로 모든 자원을 활용했다. 또 몇몇 예외를 빼곤 각자 토지를 소유하여 자급자족의 자립적 경제를 가지고 있는 100가구 미만의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녀가 소규모 공동체가 가지는 안정감이나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당연한 그런 문화, 또 불교적 가치관에 따른 의연함 등에 대해 놀라워하고 높이 평가하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녀 스스로 인정했듯 전통사회의 모습들을 지나치게 과장한 측면이 있고, 일부에선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측면이 있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키질은 너무나도 우아한 작업’, ‘이 땅에는 흉측한 기하학도, 기계화된 생산라인도 전해진 적이 없었다.’ 등의 수식어 표현으로 전통사회를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현대사회의 모든 것들엔 부정적 수식어를 붙이는 걸 제외하고서라도, ‘영양 불균형 때문에 서양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건강 문제들을 라다크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극단적으로 높은 콜레스테롤 섭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고 하며 전통적 생활방식으로 사는 라다크 사람들이 기대수명은 낮지만 대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한다고 한 부분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1970~80년대 통계를 바탕으로 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라다크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버터차(Gur-gur Cha or Tibetan tea with salt and butter) 때문에 오래전부터 고혈압을 앓는 사람들이 종교에 관계없이 많았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각주:1]

또 라다크의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강조하고자한 나머지, 95%의 중산계층, 5%의 귀족계층과 하류계층의 세 계층이 신분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긴장이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서술하였는데 그곳은 분명 관습적으로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는 사회였고, 불가촉천민인 몬, 가르바, 베다 등은 그녀가 낭만적으로 묘사한 축제에서 함께 앉아 마을 사람들이 쓰는 접시와 컵으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는 사회였다. [각주:2]

마지막으로 저자는 상호부조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인간 중심적 공동체들은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중략)자기 일을 접어두고 반드시 그 장례를 도와야한다는 강제적인 규약은 없다.’라며 이 공동체가 협력하는 방식이 유연한 것이 개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연대감, 일체감, 친밀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서술하였는데, 나는 그것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한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 노동과 달리 자발적인 것의 경우 언제나 도움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립적인 상황이라면 모를까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전반적으로 소규모 공동체가 자급하는 경제를 가지고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인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적고, 빈부격차가 적으며, 서로 협동하는 사회분위기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수용하고, 라다크의 전통사회를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회로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사회가 가진 장점도 있으나 분명히 물질적으로 빈약하고 유아사망률도 높으며 봉건적 신분사회가 남아있는 점들은 단점일 것이다. 그런 단점들이 있기 때문에 그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습적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페루의 모습

 페루도 라다크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겠지만, 대규모의 자본이 수도인 리마와 그 주변도시, 그리고 관광도시들로 투입되었다. 전기시설, 대로 등은 물론이고 현대화된 건물들이 들어섰다. 처음 가본 리마는 부산보다도 화려한 도시였다. 직선적인 도로들이 계획된 도시란 느낌을 주었고, 서울의 청담동처럼 높은 빌딩, 커다란 쇼핑몰들도 여럿 있었다. 곳곳의 공사현장들은 리마에 머문 내내 매일같이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리마 물가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사관과 은행이 모여 있고 좀 부유한 동네인 San Isidro 구역에는 그 구역 관할 경찰이 따로 있었고, 24시간 순찰을 돌고 있었다. 멀리서 나무를 가져와 인공적으로 조성한 푸른 공원들도 많았고, 미국의 어느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거기에 살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이 참 많았다. 페루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집들의 주인이 아니라 운전기사나 로비 경비, 아니면 가정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서양인들과의 혼혈이 아닌 원주민들은 리마의 구시가지의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사람을 딱 한번 마주쳤을 뿐, 리마에선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다.

 또 주변의 쇼핑몰들에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식당들로 가득했다. 버스 안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손에는 삼성의 스마트폰이나 아이폰, 아이팟 같은 전자기기들이 들려있고, 옷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 화려한 도시인 리마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해서, 부유한 동네가 아닌 곳은 한 블럭을 사이에 두고 엄청나게 낙후되어있다. 또 리마를 조금만 벗어나보면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판자집 같은 걸 짓거나 낡은 슬레이트 지붕 같은 걸로 지어져있는 집들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가도 리마에 비해 엄청 낮은 편인 그런 곳들에는 젊은 층은 모두 리마나 쿠스코 같은 관광도시들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만이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분명 페루의 모든 사람들이 개발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페루의 우말라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기반 확충과 거시 경제안정 유지가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극빈층 지원 프로그램, 최저임금 인상, 광물 산업 세금 인상 등을 통해 소득 분배를 하는 걸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케인즈주의에 따라 경제 성장을 하고 한편으로 빈민지역을 중심으로 무언가 사회보장정책을 시행하려고 했던 그런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루는 빈곤선 이하 인구가 30%가 넘고 지역별, 계층별 빈부격차가 심각함에도 국제사회에서 지원하는 지역들조차 빈곤율이 높은 지방보다는 도시 빈민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리마 등 수도권과 쿠스코, 삐우라 등 지방 주요 거점 도시를 중점 지원하고 있어 그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대부분 빠른 경제성장을 하여 그 소득을 사회보장제도나 빈곤층 개발 프로그램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것임을 우리나라의 경험에서부터 알 수 있다. 또 지금 이루고 있는 높은 경제성장률 또한 광물이나 농수산물 등 원자재 수출로 이루어진 게 대부분이라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결국 떨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당장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되면 경제성장률에 타격을 받을 것이다.

 

 

 

페루에 올바른 개발방향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저자는 변화된 라다크지만 지금이라도 소규모의 탈중심화된 경제공동체, 즉 지역경제체제의 부활을 지원하여 문화와 생태의 다양성 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움직임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지역 스스로 기본적 욕구(주거, 식량, 의복 문제)를 충족시킬 수 있고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공동체들이 만들어지길 기원한다.

 

 나는 저자가 제시한 대안적 움직임인 라다크 프로젝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개발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그를 정부에 강력하게 어필하는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필요가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에 올바른 개발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수혜를 받고자하는 사람이 단순히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새마을운동에서 외치던 자조정신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개발협력 측면에서보자면 참 특이한 나라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입장을 갖게 된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먼저 하고 분배를 나중에 한 모델의, 어떻게 보면 기존의 인습적 개발을 통해 이루어진 사례다. 그 중 성공한 모델로서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는 모델은 새마을운동이다. 페루를 비롯한 여러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의 개발모델을 따라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나는 새마을운동이 성공을 거둔 것은 자조, 협동, 근면, 절약등의 전통 공동체 정신을 기조로 삼았고, 필요를 가진 당사자들을 참여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을 참여시키는 과정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한 점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실패한 것이 조금 아쉽다. 그리고 그 개발의 방향이 지나치게 근대화에 초점을 가지고 시멘트 무상제공 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쉽다. 결국 농촌의 개발에는 성공이었지만 도시새마을운동은 실패하여 전체적으로는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다. 전통 공동체의 상호협동, 스스로 돕는 자조정신 등의 가치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고, 거기에서 개인이나 단체가 공동체를 조직하여 다양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내고 정부가 중간에서 조정하여 함께 지역개발의 틀을, 말하자면 도시계획을 함께 하는 방향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페루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서구의 공여국들을 따라 수도권지역과 쿠스코 등의 지역거점 도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주로 기초 인프라 확충 마스터플랜 프로젝트가 많다고 알고 있다. 또 보건개발에 수요가 많아 보건개발프로젝트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우리나라가 서구의 공여국들이 덜 지원하는 저개발지역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보건개발에 대한 프로젝트와 함께, 빈곤선 이하의 인구를 줄이고 지역별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에 좀 더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된 경험을 가진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다크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여러 시사점들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을 좀 더 개량한 형태의 잘살기 운동을 페루에서 시행한다면 어떨까?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주석 및 참고자료

  1. 1. p168, "Hypertension or persistent high blood pressure is a perennial problem irrespective of religious groups. (중략) The consumption of Gur-gur Cha or Tibetan tea with salt and butter is blamed for the prevalence of high blood pressure.", , PHUNTSOG STOBDAN, New Delhi [본문으로]
  2. 2. 칼럼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오래된 현실 문제>, 정호영(자다푸르 대학 사회학 박사), 2014.05.1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