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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책

[독후기록#6. 빅퀘스천_더글라스케네디] 타인의 인생을 통해 내가 보이다

 

 


빅 퀘스천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출판사
밝은세상 | 2015-04-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지리멸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빅 퀘스천과 해답! -《...
가격비교

 

 알라딘에서 충동구매한 책들 중 하나인 이 책은 그냥 가볍게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읽기 시작했다.

틈틈이, 정말로 할 일이 없을 때 조금씩 읽다가, 카페에서 휴식 겸 '딴 짓'을 하기 위해 펴 들고 많은 부분을 읽고, 주말인 오늘 다 읽게 된 책.

 

 주욱 이어지는 것보다는 챕터별로 끊겨 있어서 여러번 끊어 읽어도 무리가 없었고, 또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인만큼 어떤 이웃집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처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크게 7가지의 질문에 대해 글쓴이의 경험/간접경험을 그 답변 삼아 들려주는 책이었는데, 작가의 인생관이랄까.. 생각들이 나에게 '나는 어떤지' 생각해보게 했다.

 가장 첫 챕터는 '행복'에 관해 묻는 챕터였다. 책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큰 물음인 느낌이랄까. 다른 챕터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는 곳이 참 인상깊었다.

 

- 내려앉은 눈으로 뒤덮인 공간에, 아무도 없고, 고독과 우울이 약간 깃들어 있는 이미지를 생생하게 상상하는-

 

귀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내 스키가 눈을 긁어대는 소리밖에 없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식해버려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저 너머 세사은 그저 느낌만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어느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일상은 이제 내 주변에서 까마득히 멀어져 있었다.

-p21

 

 문득, 나에게 이런 공간이 있었는지 떠올리게 되었는데, 먼저 떠오른 건 가장 유사했던 경험이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지만 몇 십년만의 폭설이 있었던 두세차례가 있었다. 그럴 때 경험했던 것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그런 곳을 찾아가 가만히 있었던 때 느꼈던 고요함과, 신문 배달을 위해 눈으로 뒤덮인, 빙판이 되어버린 아스팔트 언덕을 올라가며 거칠게 숨을 내쉴 때 저런 유사한 기분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은 참 묘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장면들을 떠올리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끝없이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면 또다른 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일을 다 끝내면 또....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상의 복잡함이라니?

-p22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앞길에 장애물과 심각한 고민거리, 고난을 던져놓는다. 한편 우리는 흥미로운 것, 끌리는 것, 위험할지도 모르는 것 등은 옆으로 제쳐둘 때가 많다. 위험이 수반되는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능력을 아예 잃어버릴 때가 많다. 예측가능한 일만 한다면 우리는 결과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출발이 안전한 일일수록 결과 또한 예정되어 있다.

-p31

 

괴롭고 불안한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지한다면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란 '흥미로운 삶'을 이루는 것이다.

-p32

 

인간은 누구나 성장 과정의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p43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노예가 되기 쉽죠. 절대로 '있는 그대로'에서 바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살기 쉽다는 뜻입니다.

-p54

 

현실에 안주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로 자기 방어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기 방어적인 태도는 오히려 삶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데 걸림돌이 되기 쉽다.

-p60

 

 글쓴이가 경험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위의 구절들에서 나는 멈칫거렸다. 내가 들었던 말이나 내가 했었던 생각들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용한 부분의)첫번째 단락의 구절에서는 주변에서 가끔 '너는 일중독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다. 아직 나는 나를 많이 모르고, 꿈이 분명치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관성을 따라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두번째 단락의 구절에서는 마지막 구절이 나를 탁! 쳤다. 나는 좀 보수적인 편인데, 마지막 '출발이 안전한 일일수록 결과 또한 예정되어있다'는 구절이 나에게 교훈을 주고 있었다. 좀 더 위험이 수반되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에서 바뀔 수 없다고 속이지 말고 .... 조금 더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결정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살면서 중요한 것들이 참 많겠지만,  '호기심'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세번째 단락 구절을 통해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호기심을 유지하고 흥미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 성장 과정의 경험에서 난 상처들을 보듬고 '용서'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전반적인 삶의 기조랄까. 삶의 태도가 되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글쓴이의 경험 속에서 얻은 교훈적인 생각들이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아래는 그 중 하나인데, 누군가와 말싸움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다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나 결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조만간 지나간 과거로 치부될 뿐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겠지만 곧 과거로 치부될 일에 대해 지나친 분노를 쏟아 내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p103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p109

 

 

나는 종종 지나치게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드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대부분 내 주장이 강하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를 설득시키려고 논쟁을 벌일 때다. 그 때의 나를 향해 하는 말인 위 두 구절에서, '그래, 지나치게 분노를 쏟아내거나 후회할 필요도 없고. 우린 다 각자의 눈으로 본 진실을 믿는거지. 그냥 다른 것 뿐이지.'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종종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위 구절을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옮겨 적어두었다.

 

아래는  글쓴이가 정말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나는 계속되는 가정불화로 다른 위안거리를 찾게 되었다. 예술작품을 관람하고, 공연을 보는 게 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내 소설 <모멘트>에는 이혼하고 메인 주에 사는 주인공 토마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부모의 계속되는 싸움에 지친 토마스는 아버지에게 도서관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 그 부분은 내가 겪은 이야기에 기초해 썼다.

-p176

 

나 혼자 길을 걸을 때에는 어머니의 간섭이 없었고, 아버지와 걷는 속도를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동생의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눈으로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익숙한 장소라도 혼자 그곳에 가면 신기할 정도로 느낌이 달라진다. 아주 익숙한 장소라도 혼자 그곳에 가면 신기할 정도로 느낌이 달라진다. 2번가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21스트리트에서 <뉴욕포스트>를 파는 신문팔이 소년들,(중략), 그리고...

 내가 주변을 제대로 관찰하기 시작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p177

 

집을 벗어난 곳에서 느끼는 즐거움, 소설이 주는 도피의 즐거움만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방랑자 기질을 처음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탈출을 생각했다.

-p179

 

전에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든다. 혼자 길을 걷거나 혼자 영화를 보거나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 아무튼 혼자 있는 시간을 종종 가지려 하는 편이다. 글쓴이가 묘사하고 있는 저런 즐거움과 주변을 제대로 관찰하는 즐거움이 나에게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그런 방식을 취하는 걸까..? 확실히는 모르겠다.

 

 나도 글쓴이처럼 어릴 적 가정불화를 겪었을 때 다른 위안거리로, 한 때 온라인게임에 미친 적이 있었다. 거의 48시간을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한 적도 있는 중증의 게임중독이었었다. 이후에는 판타지소설 중독이었고... 하여튼 각종 딴짓거리를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은데 ㅎㅎ

 

 어떤 슬픔이 다가올 때 내가 대응했던 방식은 아마도 '회피'였던 것 같다.

 글쓴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 아들의 병으로 인해 겪은 슬픔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서, 문득 얼마전 팟캐스트로 들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젋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구절이 생각이 났다.

 

 릴케는 젊은 시인인 카프스가 슬픔에 젖어 보낸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내는데, 그는 큰 슬픔이 그냥 스쳐갔다기보다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슬픔을 사람들 틈으로 가져가서 그 슬픔을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위험하고 나쁜 방법이라며, 슬픔을 견뎌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가 또 이야기하길,  슬픔의 순간은 미지의 것이 우리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며, 새로운 그것이 우리의 속에 들어와 피 속으로 사라져버려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이미 그 순간 변했다고. 정신을 집중해서 고독을 견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에서는 글쓴이가 가지고 있던 슬픔을 인지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용서'를 이야기 하는데 그 용서가 바로 릴케의 말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용서는 상대방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마음을 점차 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의 감정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강제적으로 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를 보고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인간 조건의 중요한 요소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완고하면 안 된다. 마음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면 안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 쉽게, 화를 내는 건 어렵게 살아야 한다. 상대가 진심으로 잘못을 빌 경우 기꺼운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

-p239

 

용서란 자기 안에 있는 온갖 나쁜 기운을 밖으로 '점차 내보내는 일' 이다.

- p257

 

용서하기로 한 상대에게 '용서한다'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은 용서의 원칙에 위배된다. 타인이 나에게 더없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만 너그럽게 용서해주겠다고 하는 건 자기 과시에 다름 아니다. 과시는 용서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용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미움과 원망을 버리는 일이다. 용서를 상대에 대한 수동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했으니 자기 자신의 도덕적 우위가 증명된 셈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중략)

용서는 '잊기'와 다르다.

- p258

 

이 모든 일의 신비를 받아들여. 딱히 의미를 찾지 마. 당위를 요구하지 마. '왜 내가?'라고 묻지 마.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신비에 싸인 수수께끼가 있을 뿐이야. 우리는 뭐든 이해하려 하지만, 결코 이해하지 못해. 과거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해.

-p297

 

특별한 일, 즐거운 일, 평범한 일 속에서 우리는 목전에 임박한 비극과 부조리한 운명을 헤치고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돌고 또 돌고 또 돌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지럽고 어렵고 어마어마한 신비를 껴안기 위해 우리는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p299

 

 글쓴이는 책의 끝머리에서 힘들 때,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들을 만났을 때 두루 대응할 수 있는 말이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라고 답변을 내놓았다.

 

'굳어지지 말 것, 무릎을 굽히고 균형을 잡을 것,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써 볼 것'

 

자신을 추스르며 해주어야 하는 말이라고 한다.

 

책을 덮으면서, 아이스링크를 허우적대는 나이든 남자의 모습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또, 크로스컨트리스키장에 혼자 걷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굳어지지 말 것, 균형을 잡을 것,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써 볼 것....

 

마지막 구절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