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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책

[독후기록#7. 일의 기쁨과 슬픔_알랭 드 보통] 다양한 현장의, 다양한 일의 모습들

 

 

 

 이 책은 작년에, 부산대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학생증을 빌려 들어간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펼쳐보게 된 책이다. 그 때 나의 기분과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알랭 드 보통의 문체가 참 맞아떨어져서, 몰입감있게 앞에 부분을 좀 읽다가 말았던 책.

 우연히 알라딘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어 구매하고는, 꽤 오랫동안 조금씩 읽었던 책.

 

 초반부는 상상했던 것과 다른 느낌의 책이라 신선했다. 하긴, 보통의 책은 여행에세이마저 상상했던 것과 엄청난 거리감이 있었고, 그때문에 인상깊었었지.. 표지만 보고는 그냥 흔히 보는 경영서들처럼 뭔가.. 자신의 이론(생각)들을 주욱 풀어내는.. 뭔가 설명해주는? 그런 책일 줄 알았는데 ㅎㅎ

 

 나에게 이 책은,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의 현장'들을 체험한 그 순간에 우리를 데려다놓고, '내 생각은 이렇고, 그 때 내 기분은 이랬어. 넌 어때?'하고 묻는 듯한 느낌의 책이었다. 특히 흑백사진들이, 나를 그곳에, 그 순간에 데려가는 듯했다. 내가 전혀 몰랐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생히 보여주고 들려줬다. 책을 다읽고 난 지금은 가끔 일상의 순간에 그가 보여줬던, 또 들려줬던 부분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서울 출장을 가려고 비행기를 탔을 때 봤었던 비행기 프로펠러의 모양과 그 뒤의 짐을 옮기고, 비행기를 정비하는 사람들이라던지... 안보이던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되더라.

 

 아무튼.. 책에서 몇 가지 인상깊었던 구절이나 장면들을 기록해두고 종종 다시 보기 위해 이곳에 독후기록을 남긴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p86

 

그렇게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 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오직 제한된 수의 일꾼의 손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질 때에만, 그래서 그 몇몇의 일꾼이 자신이 작업 시간에 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는 순간에만 의미 있게 보일 수도 있다.

-p88

 

1866년에 존 러스킨이 쓴 <야생 올리브의 왕관>에 나오는 한 구절이 기억났다.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중략) 당신은 아마 '노동을 낭비하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가? 나는 이보다 인간을 더 철저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p95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중략) ..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은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런 태도는 그 이후 2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 (중략) 시민은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할때만 음악과 철학이 주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p116

 

결과적으로 18세기의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식을 뒤집은 셈이다. 이 그리스 철학자가 여가와 동일시했던 만족은 이제 일의 영역으로 옮겨갔으며, 아무런 경제적 보답이 없는 일은 모든 의미가 빠져나가고 퇴폐적인 딜레탕트의 우연적인 관심이나 받는 대상이 되었다.

-p119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동기부여와 인격>에서 한 말을 좋아하여, 변기 위에 써붙여놓기까지 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p125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중략)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p355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식만 책을 읽는 것, 마감의 압박을 느끼는 것, 동료를 물려고 하는 것, "오전 11시에서 11시 15분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해 나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버리는 것-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 모른다.

-p356

 

 

내가 겪어보지 못한 현장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에 대한 단상이랄까.. 작가의 생각들을 보여주는 보통의 글에서 은근한 위로를 받았다. 일에 치여서, 이대로 파묻혀버리는게 아닐까 불안한 나에게 불안을 잠재워주는 자장가 같은 글이었달까.

 

그저 생각없이 보통의 '체험, 삶의 현장'같은 장면들을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 우리는 어떨 때 즐겁게 일하는 지, 또 왜 즐겁지 않은지, 어떻게 일을 하면 좋을지 등 다양한 문답이 떠오르고, 나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혹 지나가다 이 책이 보이면 가볍게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