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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_감상노트/책

[독후기록#10. 언어의 온도 _ 이기주] 마음 속 지지 않는 꽃, 언어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다.


[독후기록#10. 언어의 온도 _ 이기주] 마음 속 지지 않는 꽃, 언어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꽃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마음이 좋지 않던 몇 달 전 주말이었다. 

직장인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불금'에 혼자 회의실에 불려가 윽박지름을 당하고, 주량의 배가 넘는 술을 마셔댄 다음 날이었다. 나의 가치관을 뒤흔들던 그 윽박지름에 상처받고, 숙취에 시달리다 겨우 일어난 주말 오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연말 선물로 받아 책장에 꽂아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었다.


책의 표지를 열었더니 위 구절이 쓰여있었다.

나는 위안이라는 단어를 품고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와 닿았다. 글쓴이가 서문에서 말하던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은 직후이기 때문일까.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중략)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넓이와 끔찍함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상처가 남긴 흉터를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그리고 아파 봤기 떄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


- p18~19, 더 아픈 사람,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상처받아 괴롭던 내게 누군가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 그건 예방주사 같은 일이었어. 나는 그렇게 너무 뜨겁게 이야기하진 말아야지.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좌우봉원이라는 말이 있다.

좌우, 그러니까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잘 헤아리면 근원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공부의 원천이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p23, 사랑은 변명하지 않는다,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퇴근 시간 전동차에서 느낀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은 챕터였는데, 문득, 나도 종종 지하철이나 버스를 혼자 타고 다니면서 짧게나마 주변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생각이나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재작년(2015년)이 되어 버렸지만 페이스북에 남겼던 잡생각들을 보면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이야기, 짧은 단상들, 느낌들을 별 생각 없이 SNS에 남겼던 그 때와 달리 요즘은 그저 정보를 훑어보고 스크랩하는 정도로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SNS 중독의 순기능은 뭐든 기록이 남는다는 거고, 역기능 역시 뭐든 기록이 남는다는 걸까.....

어쨋거나 기록을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니다보니 부산엔 없는 것들 혹은 부산과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데..그 중엔 지하철 타는 곳 (플랫폼에서 출구로 나가는 게이트를 나가기 전) 교통카드 잔액 충전기가 있다는 거나, 안내가 참 친절하게 (?) 많다는 거와 광고가 참 다양하다는 것 등등이 있다.

왜 다를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서울이 사람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거 같은데. 왜 사람 수가 떠올랐지..하고 꼬리를 물어보니 그 생각과 동시에, 서비스에 어떤 이슈(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이슈화시킬 사람이 많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무시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반면 사람이 많으면 적극적으로 솔류션을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나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려면 문제를 많이 만나야한다는 거,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다가왔고 좋은 쪽이든 안좋은 쪽이든 피드백을 주는 고객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찐하게 느껴졌다.

#메모 #잡생각

- 페이스북에 올린 2015 글 중에서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 p30, 말의 무덤, 언총 ,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내게 윽박을 지르던 분에게, 

다 너에게 애정이 있어 하는 말이라며 거친 언어를 구사하시던 그 분에게,

꼭 들려드리고픈 구절이었다.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더 좋은 의사표현법이, 더 따뜻한 온도의 언어가 많았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지. 


누군가를 왜 밟지 못하냐고 화를 내던 그에게, 기존 인원들이 몇 년간 노력해 온 것들을 쪽팔리다고 하던 그에게,

꼭 공유하고픈 챕터.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p34, 그냥 한번 걸어봤다,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고등학교 때, 나는 꽤나 무뚝뚝한 인간이었다.

친했던 한 친구의 표현으로는,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로봇 같던' 사람이었다.

그 때 나는 내 친구들이 '그냥' 전화해봤다거나 '그냥' 불러봤다거나 하는 말을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왜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이상하게 여겼는지 잘 모르겠다. 나도 요즘 가끔 '그냥' 전화할 때가 있고 '그냥' 불러보기도 하는데, 그건 뭐랄까, 관심의 표현이랄까.

말로써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일 때, 혹은 말하기 쑥쓰러울 떄, 그런 '감정의 신호'를 전달하는 거란 걸,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p43,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너'를 알고 싶다고 다가가 관찰하다보면 나와 다른 것들과 같은 것들이 보이고, 왜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지 혹은 왜 그러한 닮음이 생겨나는지, 혹은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함께 지내며 생겨난 것인지 그런 질문과 답 또 대화와 부대낌 등 수 많은 교류 속에서 정말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알게 된 나의 모습과 너의 모습이 존중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또 가끔은 귀엽다거나 예쁘다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떄, 그런게 사랑인가 싶다.


사과를 뜻하는 단어 'apology'는 ' 그릇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 얽힌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승리의 언어가 사과인 셈이다.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중략)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먹는 사과의 당도가 중요하듯, 말로 하는 사과 역시 그 순도가 중요하다. 

사과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하지만'이다. '~하지만'에는 '내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네 책임도 있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사과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변질되고 만다. (중략)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 sore'에서 유래했다.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하다.


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p54~55, 진짜 사과는 아프다,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사과를 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를 개선하겠다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일은 힘들다.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하고 , 그래서 아프다는 이야길 통해 서로 또 아픔을 확인하는 일이 사과하는 일이 아닌가한다. 내 잘못을 이야기하다보면 너는 또 네 잘못이 미안하다고 한다.


사과를 제대로 하면, 서로 아픔을 이야기하고 그를 보듬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서로 할퀸 채 자신의 아픔을 감싸기에 급급하여, 서로 등돌린 채 웅크리게 되는 것인 것 같다.



노력은 스스로 발휘할 때 가치가 있다. 노력을 평가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중략)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에 가깝고 상대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p81, 노력을 강요하는 폭력,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열정페이, 봉사자의 봉사를 당연시하는 것 그런 키워드들이 떠올랐다.

어제 본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페이스페인팅 봉사를 하시는 분의 고민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는데, 

참, 착한 사람이니까 넌 당연히 나에게 뭔가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식의 태도 혹은 제3섹터(NGO 등)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저임금을 받아도 괜찮다, 노력봉사를 당연시 하는 태도나 인식은 정말이지 착취일 뿐 아니라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복잡한 사실과 다양한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원래 그러한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삶도, 사람도 그리 단순할 리 없다.


-p97, 원래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말言, 마음에 새기는 것]


'원래 그런 것', '100%인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보수적이고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원래 그래'라고 변명하지 않도록 경계하자. 다른 사람의 새로운 제안에 귀를 열고 있는 사람이기를,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에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이기를. 이 구절을 다시 새겨본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그저 다양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그리 단순할 리 없다.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바람과 기대를 품은 채 덤덤하게 혹은 바지런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이다.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p162~3, 시간의 공백 메우기, [글文, 지지 않는 꽃]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은 지루하기도 하지만 가끔 매우 설레이는 일이기도 하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대만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려 만났던 '일몰'광경이었다. 춥기도 하고 배도 고파 포기하고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끝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일. 덕분에 멋진 사진 한 두장은 건져 올 수 있었고,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일몰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다. 


작가 분은 또 어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을 만났을까.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p248, 제주도가 알려준 것들,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함께 대외활동을 하던 친구 중에, '쉬는 게 두렵다'는 취업준비생 친구가 있었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본인은 혼자 집에 있을 때면,쉬고 싶으면서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고 했다. 쉬고 있을 때도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내가 쉬고 있을 떄 다른 사람이 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언가 도태되는 것 같은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단어 한 단어라도 더 보곤 한다고.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삶의 고삐를 내 스스로 쥘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든 사회가 바로 지금 사회가 아닐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상대방의 편안함과 위태함을,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중략)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p278, 이름을 부르는 일 ,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한 때 즐겨읽던 판타지 소설 중에, 치우천왕기라는 게 있었다.

거기에 '언어'에 깃든 주술적 힘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참 인상깊었었다.

위 구절을 읽으니 그 때 읽은 판타지 소설 속 구절이 함께 떠올랐다.


정체성이라. 나와 타인을 구별짓는(identify) 특징 중 하나인 이름. 

나에겐 어떤 이름들이 붙어있는가. 그 다중적이고 중층적인 이름들과 그만큼의 정체성.

앞으로 탐구할 일이 많이 남은 것 같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p292, 몸이 말을 걸었다 ,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가끔은 자신을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나는 잘 지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p306,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 느낄 때 , [행行, 살아 있다는 증거]


그래도 예전보다 주변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주변의 아름다움을.

그만큼 행복해졌다는 거겠지.


가끔 정말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끔 정말로 아름답다, 행복하다는 생각과 고마움이 함께 들기도 한다.


작가의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공감되는 구절들, 몇 가지 단어가 책 첫 장에 있는 것처럼, 내게 위안이 되었다.

주말 동안 나의 멘탈회복에 많은 도움을 준 따뜻한 언어로 된 책.